풍도 해변, 닻의 기억(풍도 조행기 2)
양력 7.29~30 (음력 6.16~17)
7물~8물 (간조 16시40분)
지난번 풍도의 선착장에서 바람결에 실려 오는 듯했던 '배올리네' 민요 가락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금 18일 만에 친구와 풍도행 배에 몸을 실었다. 한여름 바닷물이 바짝 더 데워지기 전, 묵직한 우럭의 손맛과 함께 지난번에 다 둘러보지 못한 풍도의 숨은 포인트를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30분, 대부도 선착장을 떠난 배는 안개는 좀 끼었지만 푸른 파도를 가르며 12시경 풍도 선착장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미리 예약해 둔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서둘러 점심을 마친 뒤, 채비를 챙겨 길을 나섰다.
오늘의 첫 일정은 새로운 포인트 탐색. 주로 밤에 입질을 보여주는 우럭의 특성상, 안전한 밤낚시를 위해서는 해가 있을 때 험한 갯바위 지형을 미리 익혀두어야 했다. 목적지는 민박집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 외진 갯바위 포인트였다.


낮 기온은 32~3도를 맴돌고, 바닷물 수온마저 27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운 날씨였다. 사실 이런 땡볕 아래에서 낚싯대를 던져본다는 것은 무리에 가까웠다.
그러나 갯바위로 향하는 해변 길가마다,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풍도의 명성답게 노란 달맞이꽃과 분홍빛 접시꽃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거친 바닷바람을 견뎌내며 화사하게 피어난 야생화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번 출조의 절반은 보상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인트 입구에 들어서자 낚시꾼의 본능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혹시 이 뙤약볕 아래 광어라도 한 마리 나와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캐스팅을 거듭해보았지만, 예상대로 수면 아래는 조용하기만 했다.

낚시를 접고 돌아서려던 순간, 갯바위가 있는 해변 자갈밭에 호젓이 누워있는 녹슨 닻 한 쌍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바다와 대조를 이루며 덩그러니 놓인 녹슨 붉은 닻 한 쌍.
수많은 세월 동안 거친 파도 속에서 제 온몸을 바다 밑 개흙 속에 던져 배를 잡아매었을 녀석들. 이제는 모든 소임을 다하고 뭍으로 올라와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세월을 낚는 시니어 꾼의 내면과도 닮아있었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담으며, 가슴속에서 물밀듯 시상(詩想) 하나가 떠올랐다.

풍도 해변, 닻의 기억
풍도 외진 갯가에는
녹슨 닻 둘이 호젓이 누워
지나온 바다의 기억을 밀고 당긴다
바람 거칠게 불어오던 날에도
파도가 가슴을 흔들던 밤에도
오직 하나의 깊이를 믿으며
온몸을 개흙 속에 던졌을 너
이제는 세월의 붉은 녹을 입고
바다를 그리워하는 침묵이 되었구나
잡히지 않는 세월을 좇아
한나절이나 서성이던
나의 낚싯대 끝에 걸려온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물러가는 썰물의 가슴 위로
빛바랜 사연 가만히 내려놓으며
나도 내 맘 깊은 바닥에
오래된 질문 하나 깊숙이 묻어둔다.
갯바위 탐색을 마치고 나오는 길, 지난 1차 출조 때 쏠쏠한 손맛을 안겨주었던 '빨간 등대' 포인트에 잠시 들러 몸풀기용 캐스팅을 몇 번 던져본 후 민박집으로 복귀했다.
간단히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헤드랜턴 점검과 함께 본격적인 밤낚시 채비를 마쳤다. 물때는 7물이라 다소 물살이 세긴 했지만, 해가 지고 초들물이 시작된 후 1~2시간 뒤면 틀림없이 피딩타임이 찾아올 터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선착장 포인트에 자리를 잡고 루어 캐스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저녁 7시~8시 무렵부터 묵직한 입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벽 1시까지 일행과 함께 선착장 자리를 지키며 낚시를 즐겼다. 지난 1차 출조 때의 화려한 조황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횟감과 매운탕거리로 손색없는 튼실한 씨알의 우럭 30여 마리를 낚아 올렸다.
다음 날 12시, 다시 대부도로 향하는 배에 오르며 풍도를 돌아보았다. 손맛의 짜릿함도 좋았지만, 길가에 피어있던 야생화와 갯가에 외롭게 누워 지나온 바다의 기억을 밀고 당기던 녹슨 닻의 침묵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잔상을 남기는 출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