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이틀, 야간 이틀, 그리고 이틀간의 휴무로 이어지는 이 새로운 근무 형태는 요양원 일을 시작한지 두어 달 된 나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되기만 하다. 연이어 이틀째 야간 근무를 하는 오늘 같은 날은 온몸이 모래를 머금은 듯 무겁다. 이른 저녁을 먹고 차를 몰아 요양원으로 출근하는 길, 밀려오는 하품을 참으려 연신 마른세수를 했다. ‘그래도 오늘 밤만 버티면 달콤한 이틀간의 휴일이 온다.’ 그 생각 하나로 간신히 버티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나 요양원인 건물 5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나의 그 소박한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내부에서 평소와 다르게 남성의 날카로운 고함과 동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선 복도는 아수라장과 같았다. 오늘 새로 입소하셨다는 80대 중반의 남자 어르신이 서슬 퍼런 눈으로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고 계셨다. “나는 집에 가야 하니까 빨리 문 열어!” “아들에게 가야 해..”“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해? 라며 절규하였다. 안 보내주면 당장 창밖으로 뛰어내리겠다고 몸부림치는 어르신의 기세에 동료들은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내가 들어서는 것을 본 동료인 박은주 요양보호사 선생이 난감해하는 얼굴로 반색하며 소리쳤다.“선생님! 좀 도와줘요!” 아마 요양보호사로는 유일하게 남자인 내가 반가웠나 보다.
근무복으로 갈아입지도 못하고 어르신께로 다가갔다. 난폭하게 저항하는 어르신의 힘은 장정 여럿이 달라붙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지팡이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다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무서움보다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저건 폭력이 아니었다. 오늘 자신을 이곳에 두고 떠난 아들에게 버려지지 않으려, 이 낯선 곳에 갇히지 않으려 온몸으로 울부짖는 한 노인의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85세 어르신이 든 지팡이는 누군가를 해치려는 무기가 아니라, 벼랑 끝에 선 노인의 마지막 방패였던 것 같았다.
모두가 다칠까 봐 주저주저할 때, 나는 어르신의 매서운 지팡이 사정거리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헐떡이는 어르신의 성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지막이, 그러나 또렷하게 여쭈었다.
“어르신, 아드님 걱정되셔서 그러시지요? 아드님이 어르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아드님이 얼마 있으면 올 거예요.”
‘아들’이라는 단어가 공기를 가르는 순간, 신기하게도 허공을 맴돌던 지팡이가 멈칫했다. 거칠던 숨소리 사이로 어르신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아드님이 어르신을 이곳에 모시기까지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그리고 어르신이 건강하셔야 아드님도 밖에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식 키웠던 부모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건넸다.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굳게 닫혀있던 어르신의 경계가 스르르 풀렸다. 높이 치켜들었던 지팡이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고, 어르신의 어깨가 걷잡을 수 없이 들썩였다. 아이처럼 서럽게 우는 어르신을 부축해 배정된 침상에 눕혀드리고, 이불을 덮어 가슴을 토닥여드린 후에야 길었던 소동은 끝이 났다.
제미나이 이미지
지금은 깊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간. 서너 시간씩 교대로 주어지는 야근휴식시간을 맞아 탈의실 겸 휴식실에 요를 깔고 누웠다. 하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바로 옆방인 남자 어르신들의 방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코 고는 소리와 밤새 무언가를 중얼거리시는 어느 어르신의 소리가 얇은 벽을 타고 그대로 넘어온다.
그러나 정작 내 눈을 감지 못하게 하는 것은 소음이 아니다. 조금 전 내 품에서 눈물을 흘리던 김갑식 어르신의 슬픈 눈망울이 자꾸만 잔상으로 남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잠은 저 멀리 달아나 버렸지만, 이 어두운 방에서 조용히 미소를 지어본다. 누군가의 가장 두렵고 외로운 밤을 진심으로 지켜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일흔이 다된 나이에도 내가 이 힘든 야간 근무를 버티며, 요양보호사로서 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내일 아침 떠오를 햇살은 오늘 상처받은 어르신의 마음과, 나의 고단한 하루를 따스하게 비추어 주기를 간절히 바래본다.